진리를 찾는 것은 절대자의 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 주도적 역할을 하며 찾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진리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두 가지 방식으로 규정했다고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 소크라테스는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진리 탐구를 할 때도 스스로를 보조자로 자리 매김 하였다.
- 소크라테스 자신이 스스로 진리를 낳거나 발견하는 자가 아니며 진리 탐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개인, 즉 만인이 모두 각자 주체가 되어 진리 탐구를 하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와 덕목 등에 관한 진리는 유명한 자에 의해 전승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진정 필요로 하는 자들에 의해 탐색되고 발견되는 것이다.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매일마다 각자 맡은 바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 열심히 일을 하는 직장인, 아이를 기르기 위해 힘쓰는 주부, 나이가 환갑이 되어서도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 사람들, 불안정한 노후를 보내는 노인 등…
각자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현재의 희생을 감수하고 살아가고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투입한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고 나면? 너무 열심히 달린 나머지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 지도 모르고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마냥 열심히 사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진정 중요한 인생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지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결과적으로 몇 번의 큰 위기를 겪고 나서야 자신이 달려왔던 방향이 잘못 되었음을 깨닫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먼 길을 와버렸고 되돌아가기엔 그동안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움을 핑계로 매몰비용을 탓하며 점점 더 잘못된 삶의 방향으로 흘러갈 뿐이다.
지금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지금 열심히 일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지금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무엇인가?
지금 누구를 위해 나 자신을 이토록 희생하는 것인가?
지금 나의 노후를 돌보지 못하고 무엇을 위해 나의 황혼마저 희생하는가?
무엇이 나를 이토록 힘들게 만들었을까?
한 번쯤은 자신의 인생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 과연 자신이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결혼을 한 이유가, 희생을 하는 이유가,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가 오로지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의한 것일까?
누군가의 말에 의해, 가족, 친구, 사회가 이끄는 방향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는가?
이러한 마음 속의 고민을 뒤로한 채 나의 인생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던 중, 철학 책을 읽게 되었고 소크라테스의 생각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인생의 가치와 덕목 등에 관한 진리는 유명한 자에 의해 전승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진정 필요로 하는 자들에 의해 탐색되고 발견되는 것이다.’
우리가 비로소 추구해야 할 것은 인생의 가치와 덕목인데 이것이 현실에 가려져 추구해야함에도 사람들의 머릿 속에 생각조차 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진리는 그것을 진정 필요로 하는 자들에 의해 탐색되고 발견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에게나 ‘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동물로 보더라도 인간이 일반 동물과 가장 큰 이유는 ‘이성’이 존재하여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과 현상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어떤 상황에 처하고 사람과 만날 때 자신의 주관대로 행동할 수 있고 사람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사회의 도덕이 실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탐색하고 현실을 잠시 내려놓고 인생의 가치와 덕목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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